박성용(조선대부속고 3학년)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email

박성용 (조선대부속고등학교 3학년) 묘역번호 2-37

  • 안장장소 :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 2묘역
  • 묘역번호 : 2-37
  • 성 명 : 박성용
  • 출생년도 : 1963-01-26
  • 사망일자 : 1980-05-27
  • 이장일자 : 1997-06-14
  • 직 업 : 고등학생(조대부고 3학년)
  • 사망장소 : 도청
  • 사망원인 : 총상(배흉부 맹관 총상, 우대퇴부 관통 총상)

성용아! 행여 올까 하는 기다림 속에서 너는 오지 않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내가 너를 찾을 때가 되었구나. -엄마가-

5월26일 죽음의 공포를 견디고 도청으로 들어갔다.

“엄마, 우리 학교를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요. 같은 국민, 같은 민족을 어떻게 군인들이 함부로 죽일 수가 있어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 것을 어떻게 보고만 있으란 말이에요? 참을 수 없어요.”

아들의 흥분하는 모습에 어머니의 걱정은 태산같았습니다.

“너 같이 어린 것이 나가서 뭣을 하겄냐? 너도 개죽음을 당하기 십상이다. 긍게 상용아 지발 나가지 말고 집에 좀 있어라. 이 에미 말 들으란 말이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용이는 자주 집을 나가 시위 현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밖에서 보고 온 참상을 이야기 하며 주먹을 불끈쥐었습니다.

“광주역에서 공수부대가 사람들한테 총을 막 쏘았어요. 사람들이 총에 맞고 곤봉에 맞아 죽엇어라. 광주공원에 친구가 갔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도 죽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하죠?”

26일 자취하는 친구가 걱정이 된다며 잠깐 들려봐야겠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성용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그길로 도청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성용은 부상자들과 시신들이 가득한 도청안에서 사상자들을 돌봤습니다.
형들은 성용에게 위험하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용은 도청을 빠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며 그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아들이 죽은 줄은 꿈에도 몰랐던 가족들은 연락이 닿을만한 곳은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며칠사이 깨끗이 치워진 도청을 바라보며 “죽은 사람들만 불쌍하지”하며 혀를 차기도 하였습니다. 성용이는 어딘가 살아있으리라 믿었기에 아들은 가엾은 사람에 끼어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인 성용의 작은아버지를 통해 성용이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망월동에 가매장 되어 있는 성용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