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로 떠나는 청소년 인문학 여행
오월의 현장에서 우정과 연대를 만듭니다.
오월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봅니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줍니다.
사람과 인권에 대한 고민의 씨앗을 심습니다.
모두가 이야기 할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서로의 연결이며, 연대의 시작입니다.
‘오월로 떠나는 청소년 인문학 여행-오월아 놀자’는 청소년들에게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소개를 통해 역사에 대한 올바를 이해를 돕고 5.18사적지 답사 및 해설, 체험 활동을 통해 스스로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느껴갈 수 있도록 하고자 2014년부터 광주시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가 진행하는 1박2일 청소년 캠프입니다.
캠프의 주 구성은, 1980년 5.18 일곱분의 들불 열사들의 정신이 베어있는 사적지와 당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5.27일 마지막까지 항전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싸우다 희생당한 ‘10대 청소년’들의 있는 사적지를 함께 돌아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게임과 미션 수행을 통해 스스로 참여하는 주관 단체가 중심이 아닌 참가자의 적극적인 소통과 참여, 토론, 자치 활동으로 구성하고자 합니다. 이 캠프의 운영은 청소년 활동 전문가와 청년.대학생 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 들불지기가 진행합니다.
지난 2014년부터 매해 10개 지역의 청소년들 500명을 초대하여 오프라인으로만 진행되어오던 캠프를 인간의 욕심으로 초래된 ‘지구의 재앙-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을 통한 간접적인 체험 활동으로 그 방법을 확장 시키고자 합니다.
이제 시작된 ‘오월로 떠나는 청소년 인문학 여행-오월아 놀자’는 여러분의 참여와 제안으로 계속 진화해가고자 합니다. 시작의 주춧돌은 저희가 놓지만 내용을 채우고 함께 나누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길 바래봅니다.
역사속 ‘41년전의 오월’에게 말을 걸고 다가올 ‘10년후의 오월’을 그려보는 ‘현재의 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 들불지기 일동
가톨릭센터는 5월 18일 당시 학생들이 맨 처음 시위를 벌였던 장소이다. 5월18일오전전남대학교 3~4백 명 가량의 학생들이 금남로까지 계엄군에게 쫓겨 와서 시위를 벌였다. 이 곳은 학생뿐 아니라 시민들이 거리에서 계엄군에 맞서 싸울 당시 시위의 중심지였다.
현재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으로 리모델링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관련 기록물과 기념재단 및 5·18연구소 의 소장자료, 국방부와 국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 사본 등이 전시, 보존되고 있다.
5월 18일 가톨릭센터 앞에서 최초의 학생 연좌시위가 있었고 5월 19일부터는 수많은 시민들이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5월 20일 저녁에는 택시를 중심으로 100대 이상의 각종 차량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이 거리를 누볐다.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전까지 30여만 광주시민이 매일 운집, 군사독재 저지와 민주화를 촉구했던 금남로는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거리다.
금남로 촛불 집회
5월18일 이전 3일 동안 학생과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대규모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열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군사통치 종식과 민주화를 촉구하였다.
시민들의 축제의 장
특히 5·18 사적지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분수대와 30 여년 만에 복원돼 제자리로 돌아온 5·18시계탑으로 인해 5·18민주광장은 시민들의 피끓는 함성이 울려퍼지던 옛 전남도청 앞 현장의 본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게 되었다. 매일 오후 5시 18분에는 5·18시계탑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차임벨이 울려 퍼진다.
미얀마 광주연대
5·18민주화운동의 본부가 있던 곳으로 항쟁 초기 이곳은 군부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 와 분노를 표출하는 표적이었다. 또한 이곳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맞서 싸운 시민군의 최후 결사항전지로 마지막 항전에서 수많은 시민군들이 산화하였다.
구 전남도청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어진 아시아문화 전당의 민주평화교류원은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6호인 옛전남도청 회의실의 내부타일 과 계단 난간 창틀을 대부분 그대로 복원하여, 광주 5월의 역사를 비롯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펼쳐진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다.
1980년 5월 17일 자정 전남대에 진주한 계엄군은 도서관등에서 학문에 몰두하고 있던 학생들을 무조건 구타하고 불법 구금하면서 항쟁의 불씨는 뿌려졌다. 이어 항쟁기간 중 끌고 온 시민들을 집단구타 하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주검은 학교 안에 매장, 후에 발굴되었다.
현재 전남대 정문
5·18민주화운동 당시 산화한 영령들이 묻혔던 곳으로 ‘망월동 묘지’라 불려왔다. 당시 시 민들은 처참하게 훼손된 주검을 손수레에 싣고 와 이곳에 묻었고,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5월27일 도청 함락 때 희생된 주검은 청소 차에 실려와 묻혔다. 구 묘역은 당시의 참상을 처절하게 안고 있는 곳으로 현재까지 국내외 참배객들이 수없이 다녀간다.
1994년부터 시작한 5·18묘지성역화 사업이 3년 만에 완공되어 구 묘지에 묻혀 있던 분들부터 이곳에 안장되었다. 국립5·18민주묘지는 무등산이 바라다 보이는 아늑한 곳에 터를 잡고 있으며, 이 땅에 다시는 불의와 독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상무대(육군전투병과 교육사령부)가 있었던 자리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주요 지휘관 회의가 이곳에서 자주 열렸고, 시민수습위원들이 몇 차례 드나들며 군수뇌부와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항쟁 뒤에는 시민 3천여명이 붙잡혀와 헌병대 영창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무자비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으 며, 이곳 군사법정 건물은 상무대지구 택지개발에 따라 인근 5·18자유공원에 옮겨져 복원 되어 있다.
지금은 5·18자유공원으로 변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