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빈민들이 어울려 만든 아름다운 공동체

여는 질문

1950년 6.25 전쟁은 시민들이 살아가던 삶의 터전을 파괴시켰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피해 자신의 고향을 떠나 타지로 향했던 수 많은 피난민들이 있었습니다. 전쟁은 빈곤을 만들게 됩니다. 광주로 향했던 피난민들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피난민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광천동시민아파트에서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김영철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임을 위한 행진' 네 번째 장소, 광천동 시민아파트

광천동 시민아파트

광천동시민아파트는 1971년 광주에서 최초로 건축된 연립아파트입니다.

광주에서 처음 지어진 아파트라고 하니, 돈이 많은 부자들이 살았던 곳 같습니다.

이 아파트는 6.25 피난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아파트는 광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였습니다.

이후 이 곳은 들불야학의 강학과 학강들의 교실이자 사랑방이 되었고, 1970년대 빈민 운동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공무원 신분까지 포기하고 가난한 이웃과 함께 했던, 빈민운동가 김영철

1977년 10월, 낙후지역의 개발을 위해 설립되었던 전남 협동개발단은 광천동 시민아파트의 담당자로 김영철을 파견하였습니다.

당시 30세였던 김영철에게는 가난한 사람들과 평생 함께 살아가겠다는 봉사의 마음과 희생정신이 충만했습니다. 그는 공무원의 삶을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두 살 아들을 데리고 시민아파트에 입주했습니다.

그는 광천동시민아파트를 중심으로한 청년회 총무를 자처했고, 동네 청년들을 설득하여 주기적인 마을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광천동 시민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장실이었습니다.

광천동시민아파트의 화장실은 재래식이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는 화장실을 가는 것 자체가 고난이었습니다.

그가 작정하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자, 마을 주민들은 점차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고, 김영철은 광천동 시민아파트 A동 반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아파트 175가구의 종교, 직업, 수입, 부채 등을 바탕으로 기초조사표를 작성하고 종합개발사업 계획안을 만들었습니다. 청년회를 부활시켰고, 어린이 주말학교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폐업상태의 광천 삼화신용협동조합을 인수받아 정상화시켰습니다.

김영철의 이러한 활동은 주민들에게 인정 받아 A동 반장을 거쳐 광천동 합동반상회에서 새마을 지도자로까지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김영철과 들불야학의 만남

1978년 7월, 들불야학의 강학을 모집한다는 벽보가 광천동 시민아파트에 붙었습니다.

야간 중학교를 설립하고 싶었으나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던 김영철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들불야학의 입학식에 주민 대표로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학들과 친해지기 시작하여 형제처럼 가까워졌습니다.

그는 들불야학의 2기부터 생활 강학으로 참여하여 시사 과목과 레크레이션을 담당하였습니다.

그의 집 A동 114호는 들불야학팀들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주민들과 만나 막걸리를 나누는 삶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김영철의 집에는 박용준이 함께 살았으며, B동 106호에는 윤상원이, C동 3층에는 들불야학 교실이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갔습니다.

현재 시민아파트는 ‘광천동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에 따라 주민들의 이주가 거의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아파트 옆에 있는 들불야학 옛터(5.18사적지27호)는 존치구역으로 포함돼 보존될 예정이나 시민아파트는 재개발로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현재 해당 주택조합과 해당 기관들이 보존 방안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닫는 질문

1. 광주 지역 최초 아파트라는 의미,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공동체라는 상징성, 5.18 민중항쟁 당시 ‘참언론’의 역할을 담당한 들불야학과 투사회보의 산실인 이곳을 어떻게 보존하는게 맞을까요? 낙후되어 사람이 주거할 수 없으니 철거하고 재개발해야 할까요? 사적지로 보존하고 의미있는 공간으로 보존, 활용해야 할까요?

2. 41년 전 시민아파트의 주민들은 가난했지만 함께 였습니다. '청년 고독사' '노인 고독사'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나 혼자 산다' 는 예능이지만 '나 혼자 죽는다' 는 현실입니다. 이들에게 41년전 들불야학, 시민아파트 같은 공동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런 비극적인 일들을 줄여나가기 위한 사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 곁의 들불, 빈곤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1970년대 도시 빈민들과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꾸려나갔던 역사가 있는 공간입니다. 2021년, 우리 곁에는 그 근본의 원인, 빈곤과 맞서 싸워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홈피스 행동

‘너 공부안하면 저렇게 된다’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은 듣는 말입니다.

폐지를 줍는 노인, 길에 누워 잠든 노숙인 등 우리 사회는 빈민들을 대부분 ‘저렇게 되지 말아야 하는 사람’ 으로 말 합니다. 그러나 가난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의 이야기 일까요?

우리가 노력만 하면 가난을 피해갈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는 IMF이후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약한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홈리스행동’은 홈리스 문제를 게으름, 무능 등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인식에 반대하며, 노숙은 물론 주거빈곤상태에 처한 홈리스 대중들의 조직된 힘을 통해 홈리스 상태를 뿌리 뽑고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출처: 홈피스행동

홈리스 행동은 홈리스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으로 정부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홈리스 인권 옹호활동을 통해 이 사회의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의 존중과 존엄을 위해 지원하고 함께 해왔습니다.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여러분 ‘내구제’ 대출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급한 대출을 필요로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종 불법금융 사기를 말합니다.

당장 생활비가 없어서 고민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작업대출, 내구제대출, 휴대폰깡, 가전제품렌탈, 휴대폰연체, 대포통장 등 갈수록 다양해지는 변종 대출 수법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출처: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는 이제는 더 이상 청년들의 금융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 버릴 수 없다고 말하며, 사람 중심의 경제생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입니다. 특히 청년에 특화된 재무상담과 교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법금융피해 예방 캠페인 및 사례접수, 피해자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