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여는 질문

누군가를 기억하고, 기린다는 것은 때로는 너무나도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했던 친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갖고 있나요?

임을 위한 행진 마지막 장소, 5·18 구묘역

임을 위한 행진곡의 뒷이야기 "신부 박기순과 신랑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982년 2월 20일, 망월 묘역에 하나둘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광주민중항쟁의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의 동생이자 박기순의 올케인 윤경자의 제안으로 신랑 윤상원과 신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열린 것입니다.

결혼식장에는 신혼 방에 쓸 이불이며 옷가지는 물론이고 축의금을 받는 사람까지 있어 여느 결혼식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먼저 신랑 측에서 초빙한 임곡의 무녀가 신부의 묘에서 망자를 불러내는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문병란 시인이 주례사를 대신하여 축시를 낭송했습니다.

돌아오는구나
돌아오는구나
그대들의 꽃다운 혼
못다한 사랑 못다한 꿈을 안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부활의 노래로
맑은 사랑의 노래로
정녕 그대들 다시 돌아오는구나

결혼식이 끝나자 옷가지 이불 등을 태워 하늘나라로 보낸 후 하객들은 음식을 먹으며 두 분의 결혼을 축하하였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지 15년이 지난 1997년, 5.18국립묘지가 조성되면서 두 분을 합장하여 함께 모셨습니다.

창작 노래극 – 빛의 결혼식

영혼결혼식이 치룬 후 1982년 4월 황석영이 박기순, 윤상원 두 분의 영혼결혼식을 기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의지를 결집하자는 의미로 창작노래극을 제안하였습니다.

소설가 황석영이 노랫말을 맡고, 김종률이 작곡을 담당하였습니다.

황석영은 백기완과 김준태의 시에서 골라 노랫말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 백기완의 장편 시 ‘묏비나리’ 중 한 부분을 차용해 가사를 만들고, 김종률이 작곡한 노래가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맺어진 두 남녀가 영혼결혼식을 하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후배들을 격려하는 마지막 합창곡이었던 것입니다.

노래에 생명을 불어넣은 세계 각국의 저항 가요들

쿠바의 ‘콴타나메라, Guantanamera’는 시인 호세 마르티의 시가 쿠바의 상징곡이 되었고, 멕시코의 ‘라쿠카라차, La Cucaracha’는 멕시코 농민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한 멕시코 농민의 상징곡이 되었고,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는 프랑스혁명의 상징곡으로 프랑스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 저항의 노래 대표곡 ‘임을 위한 행진곡’

한국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임을위한행진곡’ 아시아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애적정전(爱的征战), 사랑의 출정>, <노동자전가(勞動者戰歌)>, <노동자찬가(勞動者讚歌)>, <노동의 존엄(勞動與尊嚴)>, <Solidarity,연대>… 홍콩, 대만, 중국, 태국, 일본, 캄보디아, 미얀마…

서로 다른 제목으로 불리고 있지만 모두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가사, 멜로디는 한국의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지난 2020년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는 한글 가사 그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기도 하였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미얀마 민중들의 시위현장에서도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민주주의 한류, ‘임을 위한 행진곡’

일곱 편의 창작곡 중 ‘님을 위한 행진곡’은 널리 알려지는 과정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날 이후 임을위한 행진곡은 소외된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모든 장소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되었습니다.

1983년부터 30년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되어 왔으며, 97년부터 08년까지는 정부 주관 공식기념식에서도 제창되었습니다.

2013년 6월 27일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후 가수 들국화 전인권을 비롯한 이은미, 안치환, 송가인, 전효성, 정우성 등 많은 연예인들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노래하면서 국민적 저항가요로 대중화되었고 영화의 소재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임을 위한 행진곡’은 동남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고, 독재와 폭력에 저항하는 모든 곳에서 대표적인 저항가요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류 열풍의 원조였던 셈입니다.

닫는 질문

1.수 천 권의 책과 말보다 한 곡의 노래가 전하는 메세지가 더 클 때도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을 마쳐가는 지금, 여러분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요?

2.여러분은 무언가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노래를 알고 있나요?

3.내가 세상을 떠난 날 나의 묘 앞에 울려 퍼졌으면 하는 노래를 한 곡 정해 볼 수 있나요?

'OOO을 위한 행진곡'

40년 전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먼저 간 임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노래는 이제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라 부르짖는 목소리와 함께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주민 노동자의 절규 속에서

거리의 폐지를 줍는 빈곤 노인과 홈리스의 긴 저녁 가운데에서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이 죽음으로 향하는 현장에서

동등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성소수자의 외침에서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여성들의 희망 가운데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미얀마의 거리에서

내일을 상상하면 그저 막막하기만 한 청년들의 한숨 가운데

그 속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다시 불리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그 뜨거웠던 거리에 있었던 시민들이 꿈꿨던 광장을 넘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더 인간답게, 평등하게, 존엄하게 바꾸어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있는 공간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위한 노래

OOO을 위한 행진곡, 당신에게 OOO은 무엇인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Event

임을 위한 행진곡을 혼자 또는 친구들과 함께 부르는 영상을 찍어주세요. 영상을 찍어 유튜브 또는 페이스북에 올려주시고 링크를 아래 구글폼을 통해 보내주시면 추첨을 통해 5.18관련 도서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