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16일, 그 날의 기록 : 서울의 봄과 민족민주화 성회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email Share on print 여는 질문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항쟁이 일어나기전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탕, 탕, 탕’ 대통령이 총에 맞았다! 1979년 10월 26일, 이른 저녁이었습니다. 청와대의 담장 밖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3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식사 자리에서 울린…

임을 위한 행진,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email Share on print 여는 질문 누군가를 기억하고, 기린다는 것은 때로는 너무나도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했던 친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갖고 있나요? 임을 위한 행진 마지막 장소, 5·18 구묘역 임을 위한 행진곡의 뒷이야기 “신부 박기순과 신랑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에 여러분을…

5월 27일, 최후의 항쟁,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다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email Share on print 여는 질문 5월 27일 도청을 지킨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을 지켰던 시민군들은 어떤 각오를 하고 있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그날 전남도청에 있었다면 어땠을 것 같나요? 임을 위한 행진 여섯번째 장소, 구 전남도청 지금은 분수대와 너른 광장이 있는 아시아문화전당, 그 옆에는 아직 구전남도청이라 불리는…

전단지 한장으로 5·18의 최전선에 선 들불야학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email Share on print 여는 질문 지금은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벌어지면 SNS를 통해 빠른 속도로 알려지게 됩니다. SNS의 힘은 통제할 수 없다는 것과 수 많은 시민들이 동시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1980년 5월에는 이러한 SNS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영방송에서는 시위에 나선 광주시민들을 폭도라며 왜곡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도 광주시민들은 1980년엔 어떻게…

도시의 빈민들이 어울려 만든 아름다운 공동체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email Share on print 여는 질문 1950년 6.25 전쟁은 시민들이 살아가던 삶의 터전을 파괴시켰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피해 자신의 고향을 떠나 타지로 향했던 수 많은 피난민들이 있었습니다. 전쟁은 빈곤을 만들게 됩니다. 광주로 향했던 피난민들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피난민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광천동시민아파트에서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김영철은 어떤…

들판에 타오르는 불꽃, 들불야학의 태동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email Share on print 여는 질문 전태일의 죽음을 마주한 이후, 전태일의 의지를 이어가고자 하였던 사람들은 무엇을 하였을까? 임을 위한 행진 그 세번째 장소, 들불야학옛터 들불야학옛터 사적지27호 청계천 평화시장을 지나 세번째 장소인 들불야학옛터로 향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야학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야학이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밤에 수업을 하는…

하루 15시간 일하면 기계도 고장난다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email Share on print 여는 질문 1960~7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어떻게 가능했을까? 임을 위한 행진 그 첫 장소, 한강 ‘임을 위한 행진’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바로 서울의 중심, 한강입니다. 여러분은 ‘한강’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한강 둔치에서 돗자리를 깔고 치킨과 맥주를 마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