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권(숭의중학교 2학년)
박창권 (숭의중학교2학년. 15세) 묘역번호 1-32
- 안장장소 :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 1묘역
- 묘역번호 : 1-32
- 성 명 : 박창권
- 출생년도 : 1966-05-02
- 사망일자 : 1980-05-21
- 이장일자 : 1997-05-12
- 직 업 : 중학생(숭의중 2학년)
- 사망장소 : 도청 앞
사망원인 : 총상(전흉부,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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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인 박창권군은 광주민주화 시위 도중 광주광역시 금남로 3가에서 도청진격 중 총상으로 사망하였기에 민주투사로서의 넋을 기리고저 이 비를 세우노라.
열다섯 나이에 외친 ‘비상계엄령 해제’ 구호에 돌아온건 계엄군의 총탄
1980년 5월 21일이었습니다.
도청 앞 금남로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계엄군의 잔인한 폭력을 보며 화가난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열 다섯 살의 박창권도 군중 속에 들어가 함께 “비상계엄령 철폐”와 “김대중 석방”을 외쳤습니다.
도청 분수대를 빙 둘러 ‘앉아쏴’ 자세를 취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몇 발의 공포탄에 흩어졌다가도 다시 모여들어 팔을 꽉 끼고 서 도청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애국가를 부를 때였습니다.
총성이 다시 울렸습니다. 이번엔 실탄이었습니다.
거리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쓰러져 나갔습니다.
창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총탄이 옆구리를 뚫고 지나간 것입니다.
한밤중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박창권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의 부모님은 박창권의 친구 창수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창권이 아직 안 왔죠? 낮에 창권이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봤어요.”
거리를 헤메이던 부모님은 결국 적십자병원 입구에 놓여있는 몇 구의 시신들 속에서 아들을 발견했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졌던, 8형제 중 가장 잘 생기고 의젓했던 아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