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범(전남중 1학년)
방광범 (전남중학교1학년. 13세) 묘역번호 2-18
- 안장장소 :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 2묘역
- 묘역번호 : 2-18
- 성 명 : 방광범
- 출생년도 : 1969-09-21
- 사망일자 : 1980-05-24
- 이장일자 : 1997-05-04
- 직 업 : 중학생(전남중 1학년)
- 사망장소 : 진월동(원제저수지)
- 사망원인 : 총상(두부 관통 총상, 두개골 좌측)
꽃잎처럼 지는 것을 슬퍼하진 마.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 있지만 좋은 세상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리......
앳되고 개구쟁이였던 열세살 소년의 머리에 겨눠진 총탄
1980년 5월 24일이었습니다.
계엄군들은 도청에서 일시 퇴각하며 광주외곽으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광주교도소와 주남마을에서 무고한 주민들을 상대로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계엄군 중 공수 11여단과 7여단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송정리의 광주비행장으로 퇴각 명령을 받았습니다. 제 11 공수여단은 광주에서 나주 간 도로를 이동해 학동과 진월동을 거쳐 송정리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던 중 광주 효천역 앞을 지나고 있던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과 마주했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시민군으로 오해해 서로에게 총을 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군 사망자 및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화가 난 이들은 효천역 주변의 민가를 향해 화풀이 보복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마을에 방광범이 살았습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지 불과 3개월이 지난 채였습니다. 개구쟁이었던 방광범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원제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필 그곳이 계엄군이 지나는 길목 근처였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천지를 흔드는 총성이 울렸고, 놀란 아이들은 재빨리 둑 너머로 몸을 숨겼습니다.
“광범아, 엎져. 엎져야.”
“탕!”
맨 뒤에 서서 뛰어오는 방광범을 향해 친구들은 급하게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몸을 채 숨기기도 전에 방광범의 머리를 향해 총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좌측 머리에 총을 맞은 방광범의 머리는 절반이 없어져버렸습니다.
함께있던 아이들이 광범의 죽음을 알렸고, 머리에 총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 방두형은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맨정신으로 받아들이기는 참혹한 현실이었습니다. 소식만 듣고서도 기절했던 아버지는, 그래도 아들 마지막 모습은 봐야 한다며 야산을 뒤져 방광범 씨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방광범 씨는 죽은 지 열흘쯤 지나서야 망월동으로 이장됐습니다.
이후 아버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매일 술을 마셨고,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이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남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