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진(광주대동고 3학년)
전영진 (광주대동고등학교 3학년. 19세) 묘역번호 1-51
- 안장장소 :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 1묘역
- 묘역번호 : 1-51
- 성 명 : 전영진
- 출생년도 : 1962-12-05
- 사망일자 : 1980-05-21
- 이장일자 : 1997-06-14
- 직 업 : 고등학생(대동고 3학년)
- 사망장소 : 노동청 앞
사망원인 : 총상(우측 두부)
어머니 조국이 나를 부릅니다. 민주·정의·자유 위해 앞서 갑니다.
‘엄마, 조국이 나를 불러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영진은 대학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공부에 매달리곤 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로 달려갔고, 밤늦게야 파김치가 된 상태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학교에 가기 전에,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겨우 밥을 먹던 때만이 어머니가 전영진을 볼 수 있는 시간의 전부였습니다.
1980년 5월 19일이었습니다.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던 영진이 겁에 질려 땀범벅이 되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계엄군이 학교를 에워싸고, 부모들을 불러 학생들을 귀가시켰다는 것입니다. 집에 연락이 되지 않자 경찰이 영진을 산수오거리에서 내려주었다고 했습니다.
영진은 그럼에도 공부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참고서를 사 영어 과외를 받고자 과외선생님 집에 갔다 오는 길이었습니다. 계엄군은 아무런 이유 없이 전영진을 붙잡고 군홧발로 짓밟았습니다. 간신히 집에 돌아왔지만, 계엄군의 무차별적 폭력을 경험한 전영진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밖에 나가겠다며 어머니를 졸랐습니다.
“아야, 시방 나가믄 그야말로 파리보다 못한 목숨이 된단마다. 긍께 참아라. 니가 나중에 휼륭한 사람 되아서 나라를 이끌믄 안 되겄냐. 긍게 나가지 말어야.”
어머니는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전영진은 답했습니다.
“엄마, 조국이 나를 불러요.”
5월 21일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부엌에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전영진은 밖으로 향했습니다. 영진은 노동청 앞에서 시위대에 합류해 ‘독재타도’를 외치다 결국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고 말았습니다. 곁에 있던 친구로부터 영진의 소식을 전해들은 부모님은 온 병원을 뒤졌습니다.
영진은 기독교 병원 영안실에 누워 있었고, 부모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